난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심각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삶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물론 집안의 크나큰 반대(우리 외가엔 그림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3명이나 되다 보니 그 반대급부라고 생각된다.)와 스스로의 능력 부족으로 결국 포기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살거라면 순수미술(fine art)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만 해도 난 디자이너라고 하면 응당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라고 하면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을 막론하고 painter에 가깝다.
데생이 되지 않는 친구들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그것만으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에 포진해 있는 디자인학과들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은 진짜 끝내주게 그림을 잘 그린다.
오히려 그림을 못그리는 친구가 디자이너라고 하면 그것이 더 우스워진다.
굳이 Designer라고 스스로 정의한 사람은 디자이너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Designer는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목적지향적 직업군의 분류명사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우리나라의 디자이너가 fine art와 commercial art의 중간 위치에서 애매하게 위치하는 점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의 미덕은 보다 혁신적이고, 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상용 객체에 첨부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Designer는 사용자에게 필요한 객체의 개념을 잡아가는 일을 한다.
뭐가 다르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다른 포지션에 위치한다.
상용 객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상용 객체가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value가 있다고 전제할 때, 그 value를 generate하는 주체가 어디에 있는가, 혹은 경영학에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 하는 value chain 상에서 어느 위치에 positioning하고 있는가에 따라 디자이너와 Designer가 갈리는 것이다.
내가 d'strict에 출근한지 벌써 3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 출근을 할 때 내 job description의 가장 윗줄에는(타이틀) UX consultanat를 적었고, 한달이 지나갈 무렵에는 UX researcher라고 적어야 했다.
사실 둘 사이에 그렇게 큰 간극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consulting을 위한 research의 비중을 늘린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난 감히 Designer라고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UX consulting이라던가 UX research가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design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전혀 디자인 업무를 보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그려온 그림에 리터칭을 가하지도 않는다.
난 그림이 나오기까지 필요한 requirement와 그림이 나온 후의 verification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서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고, 그려온 그림을 보고 내가 말한 그림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이야기 해주면 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 듯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디자이너, 내 생각엔 painter이고, 나는 디자인 컨설턴트이고 Designer인 것이다.
디자이너와 Designer의 차이가 painting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아닐테니 뭔가 다른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올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Value를 끌어내는 재료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와 끌어낸 value를 상업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사용자로부터, 그러니까 user centered로 value를 generate할 수 있는 상용 객체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Designer의 몫이다,
아무리 많은 대기업이 디자인 경영을 부르짖어도 아직까지 그들의 디자인은 디자인이지, Design은 아닌 것 같다.
S사의 B TV만 봐도, 외형적으론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을 정도로(개인적으론 반대지만) 멋진 TV를 만들어냈다고 자랑하며 디자인경영의 위업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사용자가 바라는 TV인지는 곰곰히 따져볼 문제다.
사용자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TV라는 점에서는 아직 로터리 다이얼 방식의 TV보다 훌륭한 TV가 있었는지 고민이다. (물론 리모콘의 발명은 사용의 편이성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직관적으로 어디를 조작해야 내가 원하는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에서 인지적 부하가 쏠쏠치 않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무릇 Designer라면 사용자가 원하는 최적의 방송 시청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노력이 불분명한 우리 시대의 가전제품들은 혹평을 들어도 별 소리 없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디자이너와 Designer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쩌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Designer가 살아갈 공간이 부족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IDEO는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실제 사용자들을 데려다 놓고 이리 앉히고 저리 앉히며 최상의 의자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와 같은 철학의 결과가 디지털의 시대에 와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용자 우선의 개발 프로세스가 가장 디지털적인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자이너는 심미적으로 이상적인 결과물에 돈을 받고자 한다.
Designer는 사용자가 우리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에 돈을 받고자 한다.
물론 최상의 경험에는 심미적인 요소도 한몫한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미적인 경험민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이다지도 많은데 심미적인 요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강하게 찬성한다.
의자의 높이를 1 인치 줄이기 위해 들어가는 decision making에 더 예쁜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요인만이 남아있을 지도 모를 내일이 걱정되는 순간인 것이다.
요즘 참 어수선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글도 어수선하다.
걱정이 되는 부분이 많아진 것도 있고, 내가 나아가야할 패스가 과연 거기에 잘 있기는 한가 걱정이 되기고 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Designer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길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어딘가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두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디자이너 or Designer
2007/09/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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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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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g design에서 나 같은 사람이 살 길에 대한 talk을 한 것 같다.
불행히도 서울에 있으니 Palo Alto까지 가서 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히 내가 가려는 길이 틀리지 않음이 밝혀져가고 있는 것 같다.
http://www.frogdesign.com/frogblog/design-is-your-business-gaba-event-at-frog-in-palo-alto.html
불행히도 서울에 있으니 Palo Alto까지 가서 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히 내가 가려는 길이 틀리지 않음이 밝혀져가고 있는 것 같다.
http://www.frogdesign.com/frogblog/design-is-your-business-gaba-event-at-frog-in-palo-alto.html
2007/09/12 18:32
by
anak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