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2006/10/23 17:24 | ma impression | Permanent link

SF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는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필립 딕이 이 떠올랐다면 당신은 영화팬이고, 또 SF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필립 딕이 떠올랐다면 그나마 SF에 대해 꽤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SF라고 하면 일단 학을 띄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광선검이 난무하고, 몇 광년이나 되는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이 자동차보다 흔한, 이계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생김새가 다채로운 그런 SF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다 스타워즈 얘기구나. ㅡㅡa)

이와 같은 SF에 대한 오해는 모두 SF가 대중문화, 특히 영화의 한 축을 맡으면서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본래의 SF는, 그러니까 Science Fiction이라고 하는 장르는 그 정도로 엉망인 채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최근의 SF가 Science Fantasy로 변질되어 가면서(혹자는 Space Opera라고도 부른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SF는 어린애들이나 어린 기질을 벗어나지 못한 소수의 어른들의 장난감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

물론 나도 그렇게 심오하게 SF를 탐독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그 원류나 철학에 대하여 깊이 있는 리뷰를 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이 책 '파운데이션'을 읽으면서 본래 SF가 가져야만 하는 깊이를 알 수 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작가인 아시모프 박사에 대하여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는 우리에겐, 그나마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SF 소설계의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보스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순수 과학자다.

내 경우 처음으로 접한 아시모프 박사의 작품은 청소년을 위한 천문학 입문서였다.

아시모프 박사는 대학의 강단에 서는 것만큼이나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몇 안되는 행동주의적인 순수 과학자였던 것이다.

그러한 그의 철학에 따라 아시모프 박사는 SF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과학 발전의 미래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가한다.

그는 70년 남짓한 생애에 걸쳐 600여 권의 책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기에는 주로 SF 소설에 집중했던 반면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로는 소설을 쓰는 대신 대중 과학 교양서를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 한권을 내가 읽은 것일게다.)

58년에서 80년까지 수백권의 과학 교양서를 과학 전분야에 걸쳐 썼다고 하니 그야 말로 다작에 능했고, 그만큼 사고의 넓이나 깊이가 대단했던 것이다.

 

아시모프 박사가 그만큼 글을 많이 쓴 과학자라는 것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어쨌든 소설가와 과학자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SF를 하나의 완성된 문학으로 이끈 작가라는 대목에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SF 소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만 할 원칙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58년부터 집중했던 과학 교양서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책들이 과학 교과서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 일반에 대하여 논하고 있지만, 그 서술 구조가 오히려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평이하고 재미있게 되어있어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빠져들 수 있게 되어 있다.

뭐 이런 것들은 다 그렇다고 치고, 중요한 것은 SF 소설이 가져야만 하는 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일 것이고, 그것이 순수 과학자였던 아시모프 박사가 위대한 SF 소설 작가의 반열에 설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SF 소설도 어쨌든 소설이다.

따라서 서사구조를 갖춰야 한다.

등장인물이 있어야 하고,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갈등과 화해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갈등과 화해를 통해 다양한 사건이 발생해야만 한다.

그 안에 당위성 마저 존재한다면 잘 쓰여진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작위적인 소설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이 정도만 갖춰진다면 일단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첨부되어야 SF 소설이 되는 것일까?

일단 레이저 무기, 광선검과 초광속 우주선, 로봇과 우스꽝스러운 외계인이 나온다고 SF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과학이 존재해야 한다.

최소한 현대의 과학 발전 추세에 맞춰 논리적으로 그 출현 가능성이 타당한 수준의 발전된 과학적 근거들이 소설에 녹아 있어야 한다.

100년 후 화성 유인 기지에서의 삶과 그들의 사랑을 그린다고 해서 모두 SF는 아닌 것이다.

화성에 유인 기지가 건설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술에 대하여 고찰해야만 하고, 그것들이 어설프지 않게 소설에 내재되어야만 한다.

냅다 먼 옛날 우주의 저 먼 곳 어디에서 광선검을 들고 악을 소탕하는 무리가 있다는 식으로 설정해 버리면 SF가 아니다. (이렇게 쓰니까 내가 꼭 스타워즈까 같잖아. ㅡㅡa)

물론 아시모프 박사의 소설에서도 설정을 아주 먼 미래로 설정해 버려서 기술적 진보가 상상을 초워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내부의 기술 사이의 부조화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최소화하고 있다.

굳이 어려운 말을 사용하자면 external validity(외적 타당도)와 internal validity(내적 타당도)의 문제인데, 현실 세계로 부터의 발전 가능성에 따라 소설의 세계를 설정해야 한다는 점은 외적 타당도와 관련된 것이고, 소설 내부 세계의 기술 사이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은 내적 타당도와 관련이 깊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SF 소설은 과학의 추세를 이해할 수 있는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꽤나 본격적인 고차원적인 지식 유희인 셈이다.

 

어쨌든 아시모프 박사는 휴고상(SF 소설계의 노벨문학상 정도?)을 수상할 정도의 문필가다.

우리에게도 친숙한(영화화 되었기 때문이지만) '바이센테니얼 맨', '아이, 로봇' 뿐만 아니라 꽤나 본격적인 대하소설인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아시모프 박사가 '로마사 흥망기'를 바탕으로 썼다는 SF계의 본격적인 대하역사소설이다.

그런 까닭인지 광선 무기와 우주 함대를 이용한 스펙타클한 전투보다는 그렇게 되기 까지의 전 우주적인 과학의 발달과 정치사를 그리고 있다.

 

이제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이니 앞으로 읽을 계획인 분들은 안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전 우주는 은하제국이라는 통일 왕조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통일된 제국은 어쩔 수 없이 그 발전 동력을 잃고 말았고, 거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군부는 성단별로 분권화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과학적 정치적 쇠퇴기에 천제 수학자 해리 셀던이 나타나 앞으로 2만년에 걸친 역사를 대중의 심리 상태를 수학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예언할 수 있다는 '심리 역사학' 논문을 발표한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해리 셀던의 혁명적인 '심리 역사학'은 왕조의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위대한 로봇 다닐의 도움으로 셀던은 '심리 역사학'을 완성하고 '심리 역사학'에 따라 우주의 안전을 책임질 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파운데이션은 겉으로는 우주의 과학적 퇴보를 막기 위하여 백과사전을 편집하기 위한 과학자의 집단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서는 '심리 역사학'이 계시한 전 우주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성집단이다.

그러나 과학자만으로 이루어진 지성 집단이 빠질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으로 인하여 존망의 위기를 겪게 되지만, 때마다 이 위기를 헤쳐나갈만한 선지자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고 전 우주의 평화와 안정을 찾아간다.

물론 그와 같은 선지자의 출현은 어디까지나 샐던의 '심리 역사학'에서 예언한 전 우주의 위기와 그를 헤쳐나갈 대책의 일부로 이미 샐던의 방정식에 포함되어 있던 것들이다.

 

대충의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파운데이션'이 정치와 사회를 다룬 소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데커드나 앤더튼, 루크 스카이워커 같이 스토리를 이끄는 히어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시리즈 마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의 시차를 갖기 때문에 누구 하나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셀던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오리지널 3부작에서 그는 전설 속의 인물에 가깝다.

'파운데이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심리 역사학'은 어떤 사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수식화함으로써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현대 사회 과학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아시모프 박사는 '파운데이션'에서 세계를 전 우주로 확장하고, 그 시적 배경을 먼 미래로 설정함으로써 일반적인 SF 소설 독자들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한편,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사회상을 보다 거시적으로 고찰하는 노력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SF 소설에서는 과학 발전과 개인의 갈등을 이용하여 사회의 변화를 미시적으로 보여주 것에 비하여 그 스케일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선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 경우에는 개인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그리고자 하는 쪽은 어쩐지 그 외의 다른 개인들이 너무 ?U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든다.

 

'파운데이션'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역시 '심리 역사학'일 것이다.

80년 이후 소설계에 복귀한 아시모프 박사가 야심차게 오리지널 3부작의 프리퀄을 쓰게 되는데, 이 프리퀄에서 해리 셀던이 '심리 역사학'을 발표하고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프리퀄에서 보다 자세하게 '심리 역사학'의 논리를 설명하고, 그 불가능성을 고찰하는데, 의외로 빨리 완성되는 것에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오리지널 3부작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원칙으로서 작동하는 '심리 역사학'의 힘은 대단하다.

이런 '심리 역사학'에 관련한 서사에 감동한 것은 아니고, 그 원리에 감동한 것이다.

나는 어쨌든 사회 과학자다. ㅡㅡa

사회 과학자의 꿈은, 아니 모든 과학자의 꿈은 어떠한 가정 하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법칙을 자신만의 힘으로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가령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만고불변의 법칙을 나의 이름으로 갖고 싶은 것이다.

사회 과학자로서 다양한 사건과 사고에 따른 대중의 심리상태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그 후의 일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위해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에서도 그려진 것 처럼 이와 같은 사회 방정식이 존재한다면 위정자의 손에서 악용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힘을 들여 이와 같은 방정식을 찾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매주 한번씩은 나오는 일간지의 대선 예측 곡선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고찰 덕분에 '파운데이션'은 우주선단간의 광선 함포 사격 난무에서 벗어나 SF 소설계에 하나의 큰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SF 소설에 대하여 편견을 갖고 있다면 10권을 끈덕지게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6권인 책이 어찌어찌 한국어 번역본은 글쎄 10권으로 불어났다. ㅡㅡa)

 

 

 

 

덧글: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등장인물은 다닐과 해리 셀던 밖에 이름이 떠오르지 않네. ㅡㅡa

너무 인기가 좋아서 공식적으로 출판이 된 팬픽도 3편인가 된다.

전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하긴 아시모프 박사 자체가 로봇 3원칙 정도로 밖엔 알려지질 않은 나라니. ^^a

10권으로 변역된 한국어판은 출판된 순서가 아니라 '파운데이션' 역사에 따라 구성이 된 것은 좋은데, 문제는 어디에서 한 편이 끝나는지 애매모호한 부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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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3 17:24 2006/10/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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