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B
2006/12/27 15:31 | ma impression | Permanent link

나의 청소년기는 90년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뭔 말인고 하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아니 전세계적으로도 대중문화의 황금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대중문화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둥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혹독하리만치 대중문화가 다양성을 잃은 시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마이클 잭슨과 조지 마이클이 팝을 이끌고 있었고, 메탈리카의 LA메탈은 너바나와 스매싱 펌킨스의 시애틀로 이동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혜성처럼 등장했으며, 쥬라기 공원과 터미네이터는 영화가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던 시기다.

스포츠에서도 매덕스와 클레멘스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켄그리피와 칼립켄이 만개했고, 마이클 조던과 찰스 바클리가 NBA를 양분했고, 선동렬과 이종범이 매년 가을의 왕자가 되었고, 연세대학교 농구부는 대학 농구부로는 최초로 농구 대잔치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확실히 21세기가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다양한 대중문화계의 별들이 저 하늘 높이 반짝이던 시기가 바로 90년대다.


나는 그런 황금시기에 감수성 예민한 1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이런 다양한 대중문화의 혜택을 모조리 즐기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 나이의 아이들은 대게 음악에 미쳐서 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시기에는 아직 우리 대중가요를 듣는 것은 문화의 선두권에서 뒤쳐진 아이들의 몫이었다.

물론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오로지 팝만을 듣고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래방에 가지 않아도 완창을 할 수 있는 팝송 하나 정도는 있어야 음악 쫌 듣는 아이 노릇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고 보니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던 아이돌도 국산보다는 미제 NKOTB가 훨씬 고급으로 취급되던 시기다. (그에 대응할만한 국산 아이돌이 없기도 했지만.)

나도 주로 듣던 레퍼토리는 메탈리카나 조지 마이클, 빌리 조엘, 폴리스, 마이클 잭슨, 듀란듀란, 퀸, REM, 비틀즈 정도였다. (당시엔 더 많은 가수를 줄줄 외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잊혀지는 것인가 보다. 게다가 저 시대구분도 모호한 레퍼토리는 뭐야. ㅡㅡa)

그런 내가 내 돈을 내고 처음 샀던 가요 CD가 바로 015B의 2집이었다. (처음 샀던 테이프는 국민학교 6학년때 샀던 이승환 1집이다.)


최근에 7집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미 그 당시의 충격은 사라진 것 같아 사지 않았지만, 당시의 015B는 충격적이었다.

우선 정식 멤버였던 정석원, 장호일, 조형곤이 서울대와 연세대를 나온 재원이라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래서 015B는 언제나 학구적인 밴드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잘은 몰라도 당시 그들에겐 도움도 되었겠지만, 꽤 골치 아픈 꼬리표였을게다.)

절절한 사랑타령을 해도 경쾌한 멜로디에 감춰두는 센스를 보이는가 하면, 애절하게 하려고 맘을 먹으면 다른 어떤 가요보다도 애절한 가사로 심금을 울렸다.

이제 간단하게 각 앨범에 대한 리뷰를 해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1집: 015B, 1990

이 앨범은 신해철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와해된 무한궤도의 키보드 정석원이 새롭게 015B라는 밴드로 돌아온 앨범이었다.

그래서인지 신해철이 객원보컬로 참가한 곡도 무려 2곡이나 된다. (난 그대만을, 나머지 하나는 딱 기억이 안나는데 확실히 2곡인데. ㅡㅡa)

이미 당시에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른 신해철을 보컬로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틀곡은 윤종신이라고 하는 무명의 가수가 부른 '텅빈 거리에서'였는데, 이 곡이야 말로 015B가 추구하는 애절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하겠다. (물론 지금의 윤종신은 신해철만큼이나 유명한 가수지만.)

이 곡은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가슴 아픈 남자의 찌질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 곡인데, 이 후의 윤종신 솔로 앨범과 015B의 앨범들에서 주구장창 보여주는 찌질함의 원류라고 생각한다.

아직 프로 뮤지션으로서 자리를 확실히 잡지 못한 시기의 앨범인데다, 당시의 조류가 그러해서 신디사이저의 음색이 조악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가요를 경원시 하던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이후 015B가 롱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개인적인 추천곡은 모두 윤종신이 부른 '텅빈 거리에서'와 '저 하늘 위로'다.


2집: Second Episode, 1991

첫번째 앨범이 무한궤도의 틀을 크게 버리지 못한 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만을 담은 다소 아마추어적인 구성의 앨범이었던 것에 비하여, 두번째 앨범은 본격적으로 프로 뮤지션의 세계에 접어들어 자신들이 대중 음악계에서 해야만 할 음악과 하고 싶은 음악을 적절하게 잘 버무린 앨범이었다.

다시 말해 듣기 편한 곡에서 부터 이런 음악은 처음이다 싶을 정도의 음악까지 골고루 들려주는 앨범이 된 것이다.

특히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MC Hammer의 'Have you ever seen her'를 표절했느니의 문제에 걸리긴 했지만,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에 랩의 가능성을 보여준 곡이 되었다.

여기에 첫번째 트랙으로 나온 '4210301'은 환경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상과 같은 변화뿐만 아니라 1집의 흐름을 따르고 있는 곡들도 있는데, '변해간 세월 속에서'에서는 '저 하늘 위로'의 뒤를 이어 처절한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의 조합을 보여주고 있으며, 'H에게'에서는 '텅빈 거리에서'와 같은 애절함을 윤정신의 목소리를 빌어 잘 표현해 주었다.

여기에 '친구와 연인'으로 '난 그대만을'을 넘어서는 빠른 비트의 음악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젠 안녕'이라고 하는 우리 세대 최고의 합창곡을 넣어주어 이 후의 015B의 레퍼토리를 완성한 앨범이 되어준 것이다.

2집은 1집으로 015B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팬에게는 완성도 높은 음악을, 처음으로 015B를 알게된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준 앨범이었고, 015B에게는 자신들의 방향을 정리한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추천곡은 역시나 윤종신이 부른 '변해간 세월 속에서'와 '친구와 연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집: The Third Wave, 1992

이 시기의 015B는 매년 한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있었다.

다작에 가까운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는 꽤 한정적인 계층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니, 그 이유는 TV 출연을 일제 하지 않는 이유였다.

당시의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에는 TV 출연을 전혀 하지 않는 몇몇의 가수들이 있었는데, 이승환이나 015B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하겠다. (당시엔 앨범만 팔아서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앨범이 잘 나가긴 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던 015B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대중 가요계의 스타로 떠오른 시기가 바로 이 앨범이 나온 시기인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힘이라고 하겠다.

후렴구의 '야이야아'를 듣고 깜짝 놀라서 샀던 이 앨범은 솔직히 전작이었던 2집이 1집에 비해 혁신적으로 완성도를 높였던 것에 비교하면 3집에서의 변화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적인 노래는 그 해 여름과 가을 최고의 인기 가요가 되었다. (무려 경쟁상대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물론 변화도 있었으니 윤종신의 솔로 앨범이 성공을 거두면서 메인 객원보컬이 김태우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후로도 윤종신은 015B의 노래를 부르긴 했다.)

윤종신의 미성과 대척점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파워풀한 김태우의 목소리는 015B의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메인 보컬의 변화와 더불어 이 앨범의 특징적인 변화는 '현대여성'이라는 노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찌질한 사랑타령도 있기는 했지만, 꽤 과격할 정도로 공격적인 가사를 선보였다.

015B의 앨범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앨범이긴 하지만, 그만큼 완성도의 측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앨범이었다고 하겠다.

개인적인 추천곡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과 5월 12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집: The Fourth Movement, 1993

역시 지난 앨범에서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온 앨범이었고, 조형곤까지 포함한 3인조 멤버로서의 마지막 앨범이다.

이후 조형곤은 친형과 함께 삶, 사람, 사랑이라는 기괴한 이름의 밴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현재 대중음악계에서는 사라진 것 같다.

이 앨범 역시 메가히트곡인 '신인류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어서 015B가 대중적인 밴드로 자리잡게 만들어주는 첨병 역할을 했으며, 특히 이 곡의 보컬이었던 김형돈은 TV 출연에도 열성적이어서 무려 가요톱10에서 5주연속 1위도 차지했다.

개인적인 평으로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015B의 1기가 막을 내렸다고 생각하는데, 1집부터 이어져 오던 음악색이 이 앨범에서 완성이 되고 이 후 앨범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음악을 시도한다는 느낌이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특히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젠 안녕'풍의 합창곡인데, 그동안 그들이 즐겨웠던 음악인생을 곡 전체에 풀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곡들이 무난한 것에 비해서 이렇다할 대표곡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개인적인 추천곡은 '신인류의 사랑'과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015B는 4집까지 즐겁게 들었고, 이 후의 앨범은 그렇게 즐겁지 않았던 이유로 리뷰는 4집으로 마치려고 한다.

조형곤이 탈퇴한 이유인지 이 후의 015B는 정씨 형제의 당시 즐겨 들었던 음악을 각색한 앨범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이 나의 불만이다.

하긴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뭐 어쨌든 나의 중학교 시절을 즐겁게 해줬던 015B, 이전의 음악으로 돌아갈리 만무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길 바란다.

최근 앨범의 '우린 같은 꿈을 꾼거야'는 좋더라.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2006/12/27 15:31 2006/12/27 15:31
0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8
 
어쩜 주요 레퍼토리가 저랑 똑같으신지(웃음). 거기다.. 조지마이클이 있지만.. 왬 추가요~
2006/12/29 15:47
 
by 봄나무
수정 | 삭제 | 댓글
 
봄나무님이랑은 어째 취향이 비슷한 것이 같은 시대 사람이라는 느낌이 팍팍 느껴지는군요. ^^
2007/01/02 20:24
 
by 아나킨
수정 | 삭제 | 댓글
 
김태우~~~ 여전히 너무 좋다는~~~ ^^
2007/01/03 12:52
 
by 최은영
수정 | 삭제 | 댓글
 
김태우씨는 요즘 뭐 하는지 아시나요? 뮤턴트 이후로는 통 소식이 없네요.
2007/01/05 11:06
 
by 아나킨
수정 | 삭제 | 댓글
 
찌질함. ㅋㅋㅋㅋ
2007/01/24 03:14
 
by 비누
수정 | 삭제 | 댓글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015B의 가사들은 꽤 찌질하죠. ^^
2007/01/24 14:30
 
by 아나킨
수정 | 삭제 | 댓글
 
이승환과 함께 정말 좋아했던 가수였지요. 1집부터 4집까지 달달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5집부터는 저역시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015b에 대한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킨 정말 좋은 글이네요. 찌질함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런데 그 찌질함을 극대화 시킨 이장우씨에 대한 얘기가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저는 김태우씨와 이장우씨를 제일 좋아했기에... 그리고 태클은 아니지만 4집에 신인류의 사랑은 김형돈씨가 아니고 김돈규씨 같군요 ^^;
2007/04/04 03:37
 
by 제뤼
수정 | 삭제 | 댓글
 
그런 황금기에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
공일오비 5.6.7. 집 들어보세요.
2007/04/08 12:15
 
by 파니핑크
수정 | 삭제 | 댓글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