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장 자크 피슈테르
2009/06/18 17:47 | ma impression | Permanent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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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사랑니를 뽑으러 가는 길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강남 영풍에 들어갔다.
시간이 어정쩡하게 넘았을 때 서점만큼 확실하게 시간을 떼워주는 장소도 흔치 않으니...
딱히 책을 살 계획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들른 김에 신간이 뭐가 있나 서가를 두리번 거리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편집된 죽음'이란 제목은 참 성의 없다 생각한다.
한참 추리소설과 서스펜스물이 잘 팔릴 시즌이 도래하니 대략 비슷한 뉘앙스의 제목으로 정한 것으로 밖엔...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별쇄본'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편집된 죽음'보다는 '별쇄본'이 더 그럴싸한 느낌이다.
그래도 94년 초판 출간 당시의 '표절' 보다는 훨씬 소설의 제목으로서의 가치는 있는 듯 하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표지의 고서들 때문이었다.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은 탓인지 조금은 대륙의 고풍스러운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래봐야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편집된 죽음'의 표지를 보는 순간... 이 녀석이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볼륨도 주말동안 아파하면서 읽기에 적당해 보였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책을 읽으실 계획인 분들은 pass하세요. ^^







이 책을 읽으며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리는 영미 문학을 기대한다면... 크게 배신당한다.
에드워드 램의 니콜라 파르브리에 대한 복수는 일면 선의의 복수라고 볼 수도 있다.
에드워드가 진실로 사랑했던 야스미나의 죽음에 대한,
에드워드가 누려야 했던 작가로서의 창의성에 대한,
그리고 에드워드가 니콜라로부터 받아야 했던 진정한 친구로서의 우정에 대한 정당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 에드워드가 선택한 방법은 비열하고 저속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일생에 걸친 역작을 단 한순간에 표절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에드워드의 치밀한 계획은 어디에서도 선의를 찾아볼 수 없는 악마의 그것이었다.
니콜라는 에드워드가 30년에 걸쳐 쳐 놓은 올가미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갔고,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숨통을 조금씩 조금씩 조여온다.
일반적인 영미 문학의 결말이라면...
에드워드의 계획은 어떤 선의에 의해 백일하에 낯낯이 밝혀질 것이고,
니콜라는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며,
에드워드는 조용히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편집된 죽음'의 니콜라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에드워드의 덫에 대해 참회하고 세상을 떠나며,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죽음으로 평온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즐겨보는 헐리웃의 영화의, 영미의 소설의, 소위 문화컨텐츠의 기저에 깔린 사상은 '인과응보' 내지는 '권선징악'이라 할 수 있다.
악한을 처단하지 않고 끝나는 컨텐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속편이 나오겠네... 로 쉽게 결론지어질 정도다.
그런 이유로 '편집된 죽음'을 덮는 순간 우리가 받을 충격은 '찝찝함'의 파편이다.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다음 권으로, 혹은 다음 편으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렇게 '인과응보'라던가 '권선징악'의 틀에 맞춰 돌아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새옹지마'라는 말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선과 악의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더 그렇고 그런 컨텐츠를 대량소비하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된 살인'이 재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재미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일생에 걸친 분노가 사람을 얼마나 치열하고 치밀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아닐거다.
에드워드의 광적인 치밀함은 읽는 사람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무언가 결여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에드워드는 부와 명예 모두를 가졌지만 사랑이 결여된 인물
니콜라의 허세와 오만함은 읽는 이에게 혐오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그 역시 무언가 결여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니콜라 역시 천부적 매력을 가졌으나 사랑이 결여된 인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 결여된 인물들에 대한 측은지심 정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 책은 심리 미스테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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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17:47 2009/06/1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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