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인기와 그에 당연하듯 수반되는 엄청난 비판을 몰고 다니는 작가,
뭐 여러사람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근래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사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놓을 수 없다.
환갑을 맞이한 그는 아직도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는 몇안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가 발간된 지난 여름 일본은 다시 한번 그의 인기를 확인했다고 하고,
현해탄을 건너 우리나라에서도 유난히 빠른 번역을 통해 시장에 풀리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8월 말에 풀려 고작 일주일 남짓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1권만의 판매량으로 8월 월간 2위의 판매실적을 올렸고,
심지어는 시골 장터에서도 '1Q84'를 구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도시지향적인 작가의 도시지향적 소설은 전원에서 읽어도 그 맛이 죽지 않는다는 방증이 아닌지.
(농담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으로는 '해변의 카프카' 이후 6년만이고,
중편이라고 할 수 있는 '어둠의 저편'으로 부터도 4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60대가 되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내놓고 인터뷰를 통해 헤르만 헷세와 같은 성장소설을 쓰고싶었다고 밝혔고,
많은 비평가들이 '해변의 카프카'야 말로 하루키의 마스터피스가 될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카프카상도 받았고.
개인적으로도 '해변의 카프카'는 무라카미 하루키로서는 굉장히 작정하고 힘을 실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인간 군상의 여러 단계에서의 성장을 밀도 있게 그렸다고 생각했다.
혹 그가 앞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해변의 카프카'가 수상의 이유가 될 것이라는 어설픈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 그가 '1Q84'를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 우리나라에 발간되기 전 매체들을 통해 들려온 '1Q84'는 신흥 종교 단체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미 오옴진리교에 대한 르포도 쓴 바 있었던 하루키이기에... 간만에 굉장한 환타지 소설이 나오겠군... 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좋게 봐도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은 도대체 어디가 하루키를 대표할만한 작품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 사실적인 연애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키라고 하면 '양 사나이' 연작이라던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일각수의 꿈)', '태엽감는새 크로니클'과 같이 세상에 길들여지지 못한 엘리트, 혹자의 표현으로는 소비지향적 loser의 파악할 수 없는 부조리를 관찰하는, 절대 대항하지 않는 삶을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그야말로 Japanese Philip Dick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아련한 상실감을 전해줬던 것인데 사실주의적 연애소설이라니.
'1Q84'의 프리뷰는 그런 의미에서 가슴 뛰게 만드는 무언가를 전해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간되기 직전에 일본의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던진 한마디가 꽤 충격적이었다.
아오마메라는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덴고라는 이름이 자동적으로 나왔고, 이 두 남녀의 진지한 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굉장히 길게 쓰려고 했다. (완변한 인용은 아닙니다.)
아... 이 소설 사랑이야기구나.
덕분에 예약판매는 거부했다.
물론 당시에 한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물론 당시에 한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러브스토리 같은건 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오랜 (one-sided이긴 하지만) 우정을 잊지 못하고 '1Q84'를 읽었다.
정말 하루키의 인터뷰 그대로의 소설이었다.
아오마메와 덴고, 두 남녀가 있다.
둘은 20년의 세월을 두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원한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하루키도 나의 그에 대한 우정을 모를 뿐이다.)
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고,
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위해 고뇌와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흥 종교 단체라는 것은 그런 사랑을 발견하고 완성하기 위해 하루키가 사용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이 야구가 될 수도 있었고, 스모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저 하루키가 선택한 도구가 신흥 종교 단체였을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에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얼마 전 KBS의 도서 소개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참가한 철학자도 이야기했고,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이야기하는 것이...
3권이 나와서 속 시원하게 그 뒷 이야기를 풀어줬음 좋겠다.
그 뒷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나와야 한다.
나올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양 사나이' 연작과 같은 형태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나갈 소지도 있다.
리틀피플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공기 번데기'를 하루키가 직접 쓸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치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정열적인 섹스를 해야만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에 정말로 사랑했다고,
혹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현재 진행형으로 만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은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만난다고 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믿을 뿐이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만나지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그 두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끝난 것 아닌가?
그 이상을 설명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력의 부재, 혹은 작가에 대한 땡깡일 뿐이다.
위에서 말한 도서 소개 프로그램의 그 철학자가 말하길,
하루키가 '1Q84'로 부터 써나가기 시작할 소설을 통해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완벽한 인용은 아닙니다.)
그 말에 일견 동감하고, 일견 부정하고... 모든 의견에 다 그런 것이겠지만.
하루키도 사람이다 보니,
나이를 먹고, 그 사상적 흐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을 어디에서 나누느냐는 개별 독자와 평론가들의 몫이겠지만,
내 기준으로는 '태엽감는새 크로니클'을 기점으로 조금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하루키는 정말로 누군가의 표현처럼 소비지향적 loser의 이야기를 써왔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사상적 장벽을 세우고 있었다.
주인공은 사회에 결코 적응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학습부진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후의 하루키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하는 삶을 사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사실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그것이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심지어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적 성격까지 더해 극단적으로 보여줬고,
'1Q84'를 통해서는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아오마메와 덴고는 사랑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조금 억지스러운 맛도 없이 않았던 '해변의 카프카'보다는 '1Q84'를 기점으로 노벨 문학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조금 과격하고, 정제가 안되어 있을지는 몰라고 초기의 하루키 작품들이 갖고 있는 그만의 멋이라는 것이 죽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변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아봐야 내 취향에선 점점 멀어져만 간다... 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조선일보에 실린 리뷰에 보니,
하루키의 소설은 줄거리를 요약하기 힘들다.
고 한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예전의 작품은 꽤 솔직하고 심플한 줄거리를 갖고 있었는데,
줄거리라는 것이 작가의 사상의 흐름까지 말해줘야 하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다 '1Q84'는 줄거리가 없으니까,
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1Q84'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극단적인 표현을 썼음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조선일보에선 한 여름에 읽기 좋은 책으로 '해변의 카프카'를 선정한 적도 있었다.
아... 그 고난하고 서글픈 이야기를 한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읽으라고???
그런데 '1Q84'가 줄거리가 잡히지 않는 이유를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너무 단순해서,
그저 두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나머지는 그 과정을 조금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소품이어서 줄거리가 안보인다는 사실을 너무 과격하게 표현하지는 말자.
'1Q84'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말 순수한 사랑 이야기였을 뿐이다.
간만의 책 리뷰를 이렇게 길게도 써버렸다.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을 너무도 오래간만에 만나 기쁜 마음에 더 쌓이고 쌓인 이야기가 한 보따리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고 넘쳐서... 누구라도 붙잡고 두어시간 정도 커피와 담배를 벗삼아 '1Q84'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이젠 그럴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다들 생활에 고단한 나이가 되어감이 정답.
사랑을 확인하는 것 역시 너무나 고단함이 정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