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대충 일하는 회사가 국내 2위 carrier가 된걸까??? ㅡㅡa
말씀하신 대로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기업이 일을 이따우로 아마추어같이 처리하는지...
블로그 돌아다니면서 보니 사업소 직원이 잘 몰라서 개통 못하고 헛걸음으로 돌아오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홧김에 걍 취소해버리세요. 오프라인에서 구입하면 보전료 3만원하고 USIM 카드 값도 면제라던데...
저도 기다리다 화나서 취소하고 오프라인에서 사려구요.
iPhone같은 기기가 들여와도 결국 파는 사람들은 KT이니 이렇게도 아마추어 같네요.
정말 iPhone이 아니라 뭘 들여와도 파는 사람들이 KT면... 그렇게 SKT 욕을 하고, apple와 협상을 마친 KT를 칭찬해주려고 해도... 한숨만 나옵니다.
제휴팀은 협의를 끝냈고(잘했다는건 아닙니다.), 홍보팀은 tiwitter 같은 새로운 미디어에 거부감을 줄여가도...KT 전사에 걸쳐 아직은 고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대표 역량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iPhone 배송으로 결국 KT 대표까지 욕하게 되었군요. ^^)
내 주변은 누군가는 채권보증비아깝다고 캔슬하고 대리점에서 구입했다지.
아 나도 어여 아이폰을 손에 잡고 싶구나 ㅠㅠ;;
이 망할놈의 묶임 약정들...
물론 당시에 한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트위터 잠깐 갔더니 누군가 내 아이디와 같은 것이 이미 등록되어있어서 등록을 포기 했다능. ㅡㅡ;;
난 썸머워즈 보고 좀 찜찜했는데... 캐릭터는 대박이었음...
아.. 우리 언제 볼까? 금요일마다 자네 집 근처에서 스터디한다오..
일찍 퇴근하면 연락하삼...
조만간 한번 봐야하지 않을까요???
할 말도 많고... 보고드릴 일이 참 많답니다. ^^a
Michael Jackson을 추모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담긴 동영상인데,
스톡홀름에서 이틀 전(7월 8일)에 벌어졌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두고 혹자는... 1980년대가 드디어 끝났다... 라고 평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나의 청소년기가 이제야 비로소 끝이 났다는 느낌도 든다.
그의 죽음으로 슬퍼서 눈물이 나고 오열하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 저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이리저리 헤매이다 사라져갔다.
그리고...
가슴 속에 무언가 일렁이며... 무어라 평할 수 없는 아쉬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영향으로
춤에 입문한 사람,
가수가 된 사람,
작곡가가 된 사람이 많이 있을텐데...
뭔가 비슷한 퍼포먼스 정도 해줘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2009년을 30대의 나이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적는다.
누구에게나 다 자신들 세대의 영웅이 있기 마련이다.
할아버지의 시대엔 Frank Sinatra가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의 시대엔 The Beatles가 있었을테고,
우리의 시대엔 Michael Jackson이 있었다.
80년대는 20세기의 대중문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절정이 90년대에 이어진 면도 없지 않지만,
90년대는 21세기 초의 쇠락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난 역사가가 아니니 주관적인 판단이다.)
물질적 풍요... 그것이 냉전을 위한 광고전술의 하나였을지 모르나...
풍요가 준 사치, 과도한 외적 포장...
그런 80년대 문화의 아이콘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Michael Jackson이다.
시대적 요구에 충실히 부응함은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혜택을 최대한 누려 상상을 초월할만한 성과를 쌓아 올렸다.
그는 단일 앨범으로 전세계에 1억장을 판매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의 1위를 37주간 놓치지 않았으며,
한 앨범에서 넘버원 싱글을 다섯곡이나 쏟아냈고,
자신만을 위한 놀이공원을 만들기도 했다.
다시는 누구도 그와 같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우리는 대리만족을 했고,
그가 또 다시 한번 세계의 정상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그런 그가 오늘 심장마비로 죽었다.
세월이 지나면 어짜피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영웅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운명의 인간인 것이다.
불행히 Michael Jackson은 일찍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요사이 왜 이렇게 우리가 잘 알고 지내던 유명인들이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것인지...
아직 그럴 나이가 된 것 같지는 않은데. ㅡㅡa
다이아몬드 장갑 휘날리시길 바랍니다.

정말 간만에 [내 인생의 만화]를 포스팅하려니...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
사실 지난 두어달 동안 몇번의 시도를 거듭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작성을 하다말고 하다말고를 반복하고 말았다.
덕분에 드래프트만 작성해 놓은 작품이 두편이 밀려 있는 상태.
그런데... 결국 오늘 소개하려는 이 작품은 위의 두편과 전혀 상관 없다.
미리 뭘 쓸지 알고 있었던 분들은... 조금 배신감 느끼시려나??? ^^a

이 만화를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에게서도 굉장한 오덕의 냄새가... 물론 나도 오덕이다. ^^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월간 아스키코믹(月刊アスキーコミック)'에서 연재한 이 작품은,
2007년을 배경으로 소위 VR(Virtual Reality)를 이용한 게임센터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연애물이다.
아직 아케이드 게임센터 시장이 활황이던 시절의 만화다 보니 미래의 게임환경이라는 것이 지금 실제로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그것보다 규모가 황당하게 커져있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한 게이머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게임 세계의 방향성만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언서였던 것이군.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면...
이 작가... 놀고 있는 모양이다. ㅡㅡa
혹은 '브레이크 에이지'로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벌이는 이미 마쳤는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으로 검색 가능한 그의 작품의 리스트는 '브레이크 에이지'와 '브레이크 에이지 외전: 보틀쉽 트루퍼즈', 그리고 소설 '브레이크 에이지 ex'가 전부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브레이크 에이지'라는 작품을 통해 파생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는 부라는 것이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한 우물만 파는 근성의 작가일 수도... ㅡㅡa
찾다 보니 '보틀쉽 트루퍼즈'를 연재하던 1999년에 건강악화로 연재를 중단했다고 하는데,
그의 개인 블로그를 가봐도 2007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업데이트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거 굉장히 부러운걸... ㅋㅋㅋ
그리고 아주 놀라운 사실은... 극악의 오덕스러운 작품을 그린 이 사람 여자라는 것이다.
게임 디자인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도 있어 보였고,
메카닉 디자인을 직접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굉장한 공력을 소유한 남성 오따쿠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쩐지 배신감을 느낀다.
하긴... 그림체나 치메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임을 눈치챘어야 했다.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브레이크 에이지'는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과 같이 2007년을 배경으로 한 근미래 게임센터 청소년 연애 만화다.
하나의 작품이 뭐 저렇게 다양한 요소를 끌어들였는지...
2002년 게임 메이커 대거사는 체감형 로봇 대전 액션 게임 '데인저 플래닛(이하 DP)'을 발표한다.
DP의 강점은 ISDN을 통한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해 어디의 게이머와도 대전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대전을 위한 로봇인 VP(Virtual Puppet)를 게이머 본인이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고등학교 1학년인 니무라 키리오(仁村 桐生)는 로봇 개발자를 꿈꾸는 비디오 게임 매니아로,
DP의 파일럿으로는 동네에 따라올 자가 없는 무적의 사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디오 게임 1세대이자 현역 비디오 게임샵 주인이라 게임에 대한 경력이 남다를 수 밖에...
그런 키리오가 전산동아리의 요청으로 타고 나간 전산부 제작의 VP 전산왕(電算王)이 초중량 무장으로 도배한 커스터마이징 VP 벤케이(弁慶)에게 개박살이 난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키리오는 자신의 커스터마이징 VP 쿠로(九郞)를 끌고 상대방의 게임센터(작품 내의 게임센터 이름은 코니사가 운영하는 코니 팔레스로, 세가의 조이월드 정도 된다.)로 쳐들어 간다.
VP의 디자이너로서 벤케이의 디자이너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갖고 있던 키리오, 그러나 벤케이의 파일럿이라고 나타난 타카하라 사이리(高原 彩理)는 키리오보다 1살 연상인 미모의 여고생이었다.
이에 키리오는 사이리와의 1:1 대전에 들어가면서 데이트를 승부의 조건으로 걸었고,
이 일전으로부터 DP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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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인 동시에 이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로봇 게임과 청소년 연애만으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플롯에
DP 개발의 비밀과 음모,
그리고 한명의 게이머가 프로페셔널 게임 디자이너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겻들였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작가의 그림이 워낙 미형이라 여성 캐릭터, 특히 사이리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사이리는 마치 현시점 루리웹의 천사 이시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ㅋㅋㅋ
여하튼 키리오와 사이리의 대결은 DP의 3.0 버전을 날려버릴 뇌관이 되었으나,
(사이리의 죽은 이복오빠인 디트릿트가 DP의 세계를 만들어낸 개발자인 관계로, 죽음에 이르러 자신이 없는 DP의 미래를 걱정하여 벤케이가 1000기의 VP를 격파하는 날 3.0 버전의 DP를 파괴하도록 벤케이를 디자인했다.)
사이리의 대전 파트너였던 키리오는 DP의 4.0 버전을 손에 넣게 되고,
(벤케이가 1000기의 VP를 파괴하는 시점에서 파트너로 인식되어 있는 VP에게 4.0 버전의 DP를 전당한다.)
그래서 DP의 세계는 새로운 세대에게로 그 마음이 이어져 발전해 나가 또 다음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세계를 선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브레이크 에이지'를 [내 인생의 만화]의 10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오늘 클리앙에서 놀다 만난 글 덕분이었다.
무의식 중에 난 이 작품을 잊고 살아왔다.
분명히 읽고 있었던 당시엔 전권을 다 구입했고,
지금도 어딘가 뒤지면 전권은 아니더라도 몇권 정도는 집에서 나올텐데,
게다가 이 작품을 읽던 당시 네트워크 게임이라고 하는 신천지를 발견하고 게임 디자이너의 꿈을 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 만화를 잊고 살았다.
(당시 내가 꿈꾸던 게임 디자이너는 유지 호리씨와 같은 부류의 스토리텔러였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오늘 마치 국민학교 동창을 만난 것처럼 '브레이크 에이지'의 제목을 발견하게 되고,
그 동력으로 포스팅을 하기까지 된 것이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만화]에 적었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마이너한 작품이다.
게다가 지금에 와서는 구해서 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작품이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작품 라이센스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느 순간인가부터는 무단 발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발간한 부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부르는게 값이라는 이야기도 읽었다.
이제 두자리수 포스트이기도 하니 슬슬 마이너 작품이 나와도 괜찮잖아...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왕 여기저기 소문 내려고 쓰는 글이 효용성을 가지려면 이 포스트를 읽고 작품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 인생의 만화]는 어디까지나 내 인생에 대한 추억을 쌓아두는 곳이니... 뭐 괜찮지 않겠어... 싶다. ^^
이 작품을 읽던 시기의 나는 꽤 괴짜였다.
물론 지금도 약간 괴짜의 기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내 취미 중엔 게임 스토리를 이것 저것 말도 안되게 써내려가는 것도 있었는데,
'브레이크 에이지'를 읽는 순간... 머리 속에 멍한 무언가가 남았다.
당시의 게임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놀이감이었기에
초딩 주제에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의 친구들과 '마리오 카트'를 하는 따위의 미래를 생각해볼 단서가 전혀 없었다.
네트워크 게임이라고 하면 MUD(MultiUser Dungeon) 게임이 거의 유일한 것이었고,
아무리 RPG에 빠져 살았던 시기지만 아무래도 글로만 하는 게임이라는 것이 무어가 재미있는지 감도 안왔다.
그러다 보니
으로 혼자만의 결론에 도달했고,
도저히 MMORPG 같은 것이 게임 세상의 주요한 대안이 될 미래 따위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 '브레이크 에이지'가 준 충격이란... 사카에서 원두 커피를 마시다 스타벅스의 카페라떼를 마신 정도의 것이었을까??? (대충 시대도 비슷해지면서... 내가 얼마나 늙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군.)
'브레이크 에이지'가 무슨 미래 기술 예언서라도 되는 것처럼 읽어 내려가며
친구들과 모여 앉아 시스템 구성에서 부터 클라이언트가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 데이터를 분류하는 토론들을 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참 괜한 삽들 많이 푸셨어요. ^^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수능을 마침과 동시에 국내에선 그래도 게임 좀 만든다는 회사에 가서 이런 저런 일도 하고 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그 친구들 중 정식으로 게임업계에 투신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역시 취미는 취미로 남겨두는 것이다. ^^
앞서도 적었지만... 이 작품 구해서 보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인 모양이다.
괜히 추천한다 어쩐다 해봐야... 약올리는 것밖에 안될 것 같으니 넘어가야겠다.
그런데 신촌에 있는 오래된 만화방들에선 어째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완간을 했던 시기가 대략 2000년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니...
아직도 보관하고 있을 만화방도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중요한건... 그럴 필요가 있을까??? ^^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오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추!!!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다.
흡사 FSS를 애니메이션으로 봤을 때의 실망과 비슷한 것이 몰려온다.
인형의 로봇은 모든 남자아이의 꿈이다.
그런 꿈을 또 다른 방식으로 풀이한 작품,
네트워크를 통한 게임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먼저 풀어낸 작품,
그리고 한 소년이 꿈을 이뤄 성장해 가는 모습으 보여준 작품으로 '브레이크 에이지'는 꽤 볼만한 만화였다.
그런데 2009년이나 되었는데... 언제쯤 저런 스케일의 게임 할 수 있는겨??? ㅋㅋㅋ

시간이 어정쩡하게 넘았을 때 서점만큼 확실하게 시간을 떼워주는 장소도 흔치 않으니...
딱히 책을 살 계획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들른 김에 신간이 뭐가 있나 서가를 두리번 거리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편집된 죽음'이란 제목은 참 성의 없다 생각한다.
한참 추리소설과 서스펜스물이 잘 팔릴 시즌이 도래하니 대략 비슷한 뉘앙스의 제목으로 정한 것으로 밖엔...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별쇄본'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편집된 죽음'보다는 '별쇄본'이 더 그럴싸한 느낌이다.
그래도 94년 초판 출간 당시의 '표절' 보다는 훨씬 소설의 제목으로서의 가치는 있는 듯 하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표지의 고서들 때문이었다.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은 탓인지 조금은 대륙의 고풍스러운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래봐야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편집된 죽음'의 표지를 보는 순간... 이 녀석이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볼륨도 주말동안 아파하면서 읽기에 적당해 보였고.
이 책을 읽으며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리는 영미 문학을 기대한다면... 크게 배신당한다.
에드워드 램의 니콜라 파르브리에 대한 복수는 일면 선의의 복수라고 볼 수도 있다.
에드워드가 진실로 사랑했던 야스미나의 죽음에 대한,
에드워드가 누려야 했던 작가로서의 창의성에 대한,
그리고 에드워드가 니콜라로부터 받아야 했던 진정한 친구로서의 우정에 대한 정당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를 위해 에드워드가 선택한 방법은 비열하고 저속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일생에 걸친 역작을 단 한순간에 표절작으로 만들어 버리는 에드워드의 치밀한 계획은 어디에서도 선의를 찾아볼 수 없는 악마의 그것이었다.
니콜라는 에드워드가 30년에 걸쳐 쳐 놓은 올가미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갔고,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숨통을 조금씩 조금씩 조여온다.
일반적인 영미 문학의 결말이라면...
에드워드의 계획은 어떤 선의에 의해 백일하에 낯낯이 밝혀질 것이고,
니콜라는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며,
에드워드는 조용히 세상을 등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편집된 죽음'의 니콜라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에드워드의 덫에 대해 참회하고 세상을 떠나며,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죽음으로 평온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즐겨보는 헐리웃의 영화의, 영미의 소설의, 소위 문화컨텐츠의 기저에 깔린 사상은 '인과응보' 내지는 '권선징악'이라 할 수 있다.
악한을 처단하지 않고 끝나는 컨텐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속편이 나오겠네... 로 쉽게 결론지어질 정도다.
그런 이유로 '편집된 죽음'을 덮는 순간 우리가 받을 충격은 '찝찝함'의 파편이다.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다음 권으로, 혹은 다음 편으로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렇게 '인과응보'라던가 '권선징악'의 틀에 맞춰 돌아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새옹지마'라는 말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선과 악의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렇고 그런 컨텐츠를 대량소비하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편집된 살인'이 재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재미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일생에 걸친 분노가 사람을 얼마나 치열하고 치밀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아닐거다.
에드워드의 광적인 치밀함은 읽는 사람에게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무언가 결여된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에드워드는 부와 명예 모두를 가졌지만 사랑이 결여된 인물
니콜라의 허세와 오만함은 읽는 이에게 혐오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동시에 그 역시 무언가 결여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니콜라 역시 천부적 매력을 가졌으나 사랑이 결여된 인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 결여된 인물들에 대한 측은지심 정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 책은 심리 미스테리물이다.
간만에 2주 연속 극장 나들이를 하시고 아무 것도 안남기는 것도 우울해 간단하게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요즘 뭐가 이렇게 정신이 없는 것인지... ㅡㅡa
박쥐

이제는 스스로를 작가라 부를 수 없는 위치에 왔지만,
그래도 한때 작가라고 생각했던 입장에서 봐도... 난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상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미학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으로서 박찬욱 감독을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국내 작가로는 이명세 감독을 좋아하고,
국외의 작가로는 왕가위 감독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라도 무릇 영상매체라고 하면 태생적으로 가져야할 비주얼적인 아름다움을 논외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올드보이'만은 확실히 그 비주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 꽤나 흥미롭게 봤던 기억은 있으나,
그 이전의 작품이나 그 이후의 작품 중 어느것도 아쉬움이 남지 않았던 작품이 없었다.
'박쥐'는 그 중에서도 최고봉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박찬욱만의 무언가, 정말 그게 뭔지 몰라서 무언가라고 적었지만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사랑의 길을 저버리고 타락의 길로 빠져든 남자의 이야기... 라고,
그래서 더 극단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흡혈귀라는 메타포를 이용했다고 하는 점은 높이 산다.
이 정도의 메타포를 이용할 수 있는 작가는 국내에 몇 안될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면 더 몽환적이고, 더 자극적인 영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그림자 살인'과 같은 작품은 다소 빈약한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 작품에 빨려들게 만드는 영상 메세지가 강렬한 작품이었고,
그런 이유로 대중적으로 높은 호응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최소한 수백개의 스크린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만든 영화라면 그 정도의 대중에 대한 배려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쥐'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흥미 이상의 뭔가를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각론으로 넘어가서...
송강호의 연기는 대략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중 한명이다.
그러나 나락으로 빠져만 가는 성직자의 모습을 보다 광폭하게 그릴 필요는 없었을까 생각한다.
절제된 연기라는 것으로 한 사람의 고뇌를 그리려 했다면...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다.
송강호 연기의 절정은 오히려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인 '복수는 나의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에서 훨씬 배역을 잘 소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최민식을 캐스팅하는 쪽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김옥빈의 연기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잘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런 종류의 연기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백치 연기라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쉬운 연기라...
차라리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편이 쉽다는 얘기는 포인트를 잡기 쉽다는 얘기지 그 연기를 잘할 수 있냐의 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인터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캐릭터 운운하는 여자아이들 굉장히 혐오한다.
하여튼... 김옥빈양의 연기는 무난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김옥빈을 새롭게 봐야한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난 아직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왜 이렇게 화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그는 대중적이지도 않고,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의지도 없는데,
의외로 대중은 그를 열광한다.
그렇다고 스코어가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더라.
도대체 뭐지 싶다.
그리고... 추천을 할 생각도 없다.
보고 난 다음에 기분이 나빠질 소지가 다분하다.
- 스토리: ★★★
- 캐릭터: ★★★
- 영상: ★★
- 음악: ★★★
- 추천: ★★
스타트랙

심지어 명함에도 anakin이라고 파고 다니니 뭐...
또 SF를 굉장히 좋아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라던가, 필립 K. 딕이라던가... 조금 황당한 분야로 가면 다나카 요시키라던가, 조지 루카스라던가 뭐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을 굉장히 사랑한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스타트랙'은 열심히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MBC에서 토요일 외화 시리즈로 방영했던 next generation은 정말 할 일 없을 때 가끔 봤을 정도다.
나에겐 피카드 선장이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극장에서 여러편이 개봉했음에도 한번도 극장에서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난 '스타트랙'을 미국 B급 문화의 아이콘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새 영화는 '스타트랙'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며 꽤나 재미있다고 주변의 누군가가 적극 추천을 했다.
그래서 봤다.
정말 심플한 이유였다.
'스파이더맨', '수퍼맨', '배트맨'이 이전의 시리즈를 무시하고 새로운 시리즈로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모두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수퍼맨'은 아닌가... ㅡㅡa
이번 '스타트랙'도 그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새로운 시리즈로 탄생한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분명 미국의 문화 컨텐츠를 위한 새로운 소스의 공급이 떨어져 가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20세기 말, 팝계의 화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리메이크 음악들이 득세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머라이어 캐리라던가 셀린 디온 같은 가창력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 같은 가수들이 들고 나온 앨범에 리메이크 곡들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화성은 거의 다 완성이 되어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 나오기 힘들다고.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21세기의 음악은 비트를 위주로 한 힙합이 득세하고 있다.
멜로디가 사라져 버렸다.
영화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전의 영화들도 제목만 달랐을 뿐 그 구성이 너무나 판박이 같았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제목까지 똑같이 달고 나온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엄청난 인기의 시리즈물이라면 모를까.
위의 작품들은 제목을 같이 한 새로운 작품을 표방하고 있다.
스토리라던가 캐릭터의 성격이라던가를 새롭게 구성했다고 한다.
영화식의 리메이크인 것이다.
음악으로 따지자면 편곡을 달리하고,
가창을 다른 이가 했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될까???
그런데 이런 작품들이 확실히 먹힌다.
이미 세월을 거치며 탄탄해진 스토리텔링이라던가,
기존의 시리즈를 사랑했던 팬으로부터의 호응까지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을 갖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퍼맨'의 경우처럼 괜한 시도로 혹평을 받기도 하지만.
'스타트랙'은 확실히 모든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 받아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다.
각론으로 들어가서...
난 이 작품에 나온 사람들이 누구이고,
감독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영화를 봤다.
나중에야 이 사람이 '미션 임파서블3'를 감독했다는 사실 정도 알았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 정도...
영화의 구성은 뻔하고,
캐릭터들의 성격은 명료하다.
그것이 작가주의 작품의 것이었다면... 조금 욕 먹을 수 있는 요소들이겠으나,
이 작품은 블로버스터다.
아무 생각 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어야만 하는 영화에선 위의 두가지 특징은 최고의 선이다.
'스타트랙'은 정말 생각할 필요 없이 스토리가 술술 흘러갔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어딘가에서 번역이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워프'와 '트랜스포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SF에 문외한은 아닌 것인지,
혹은 자막을 안보고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런 오류가 있었는지 조자 몰랐다.
그러고 보면 나도 대략이긴 하지만 '스타트랙'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
결론은...
여름 시즌의 시작을 가벼운 영화로 시작하길 원하는 분이라면 원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스타트랙'이다.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영화가 '스타트랙'이다.
SF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도... 의외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불행인지 최근 연애를 안하다 보니 확인할 길이 막막하긴 한데... ㅡㅡa
올 여름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다. ^^
<덧글>
내 기억으로 '스타트랙'의 오프닝 테마도 '스타워즈' 마냥 굉장히 웅장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개인적인 취향으론 그런 테마가 깔리면서 시작할 때 굉장히 감동하는 편이라 아쉬웠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인디아나 존스'나 '수퍼맨', '스타워즈'는 내 취향이다.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