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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day] 5. 사인, 싸인
2006/08/04 11:25 | anakin wonderland/another day | Permanent link

5. 사인, 싸인

 

 

진호의 사인은 질식이었다. 담수에 빠진 시체가 다 그렇듯이 진호의 시체는 심하게 팽창해 있었다. 진호라는 사실은 그의 뒷 주머니에서 나온 지갑의 운전명허증만이 말해줄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체를 확인하며 오열했다.

이틀만에 돌아온 집에서 그녀를 기다린 것은 자동응답기에 남아있던 경찰의 건조한 목소리뿐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겨우 그런 정도의 여운만을 남길 뿐이다.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김수정씨 본인이십니까?"

"예."

"이진호군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아들입니다."

"예. 다 끝났습니다. 여기 서명하시고..."

수정은 조용히 서명했다. 안치실에서 십년치의 눈물을 쏟아버린 탓에 더 울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우는 일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남 모르는 사람의 울음을 지켜보는 쪽도 수월한 일은 아니겠지만.

"저기..."

"김경장이라고 부르세요. 뭐 다른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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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4 11:25 2006/08/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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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day] 4. 백팩, 의암호
2006/07/04 20:11 | anakin wonderland/another day | Permanent link

4. 백팩, 의암호

 

 

 

진호는 기차에 오른다. 모자를 깊게 놀러쓰고 백팩을 맨 모습은 집을 떠날 때의 모습과 다르다. 아마도 집에 다시 들어간 이유는 모자를 쓰고, 그 커다란 백팩을 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진호의 엄마가 알고있는 진호의 목적지도 이곳은 아닐 것이다.

디젤 기관차는 하얀 연기를 뿜거나 하지 않는다. 은하철도 999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테쓰로도 메텔도 진호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않다. 열자엔 그저 그런 누군가가 가득 있을 뿐이다. 당연히 하늘을 날아오르는 일도 없다. 이곳은 춘천행 무궁화호인 것이다.

 

진호는 의암호 앞에 서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물안개 가득한 의암호를 봤을텐데, 물안개는 커녕 하늘엔 구름마저 없다. 너무 맑아서 서글퍼지는 날.

 

모자가 물 위에 떠오른다. 백팩은 호숫가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을 찾지도 않는다.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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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20:11 2006/07/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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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day] 3. 식사, 귀가
2006/07/02 14:51 | anakin wonderland/another day | Permanent link

3. 식사, 귀가

 

 

 

"진호야, 아침 먹어야지?"

진호를 깨운건 자명종 소리보다 열배는 더 클 것 같은 엄마의 목소리다. 창밖으로 이미 오래 전에 떠오른 것 같은 해가 진호를 괴롭힌다.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진호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못 들어올 것 같아. 일본에서 일이 있다고 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아 보기 쉬운 표정을 찾을 수는 없다. 진호는 여전히 무표정하다. 두 사람의 식사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모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집을 떠난다. 진호는 그녀의 차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두고 간 물건이 생각난 것인지, 혹은 완전히 귀가한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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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2 14:51 2006/07/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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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day] 2. 우레탄 트랙, 찌게, レベル
2006/06/22 17:38 | anakin wonderland/another day | Permanent link

2. 우레탄 트랙, 찌게, レベル

 

 

그는 지금 달리고 있다. 어지간한 운동장에선 볼 수 없는 고급 우레탄이 잘 깔린 트랙이다. 그렇다고 육상선수들이 기록을 위해서 달릴 법한 트랙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갈과 먼지로만 조성되어 있는 운동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의 조깅화와 궁합이 잘 맞았는지, 달리는 데에 부담이 없어 보인다. 그는 마치 칼루이스처럼 뛰고 있다.

걀승점을 통과한 그는 한참을 숨을 고른다. 가슴에 맺힌 땀이 그의 조깅 수트에 스며들었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 마저도 날려버려 상쾌한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그는 트랙에 눕는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부셨는지 이내 눈을 감는다.

"멋진 피니쉬였어. 반해버렸다니까."

그의 눈은 그녀의 목소리를 쫓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눈을 감는다. 구름이 물려와 그늘을 만들어 주어 한결 상쾌해졌다. 그대로 잠들고 싶은 그런 오후의 한 조각이 그를 감싼다.

몇시간이나 흘러서야 그는 일어선다. 툭툭 먼지를 떨어내는 모습에 피곤이 서려있다. 잠이 덜 깬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비가 오겠네."

비가 오면 안될 것 같은 그의 목소리가 운동장으로 퍼져 나간다. 운동장엔 아직도 인적이 없다.

 

"다녀왔습니다."

신발을 벗으며 거실을 향해 말을 했지만 대답은 없다. 실망의 기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공허함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찌게는 데워서 먹으렴.'

식탁에는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과 그의 어머니가 써놓은 듯한 메모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반찬이 담겨있는 접시들의 랩을 벗기고, 냉장고의 물병을 꺼내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찌게는 데우지 않았다.

혼자 하는 식사는 공허하다. 그의 입에서 철저하게 분해되어 가는 음식들의 비명들만이 공간을 가른다. 그는 무표정으로 음식들을 협박하고, 야무지개 그들의 일생을 마감시킨다. 그로서 음식들의 소명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에게서 소명에 대한 감사나 어떠한 감상이 표현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고마움마저도 소멸되어 버린 의식이 진행될 뿐이다. 정확히 10분 27초가 소요된 의식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는 거실로 나간다. 리모콘을 들고 제일 윗 줄의 빨간 버튼을 눌러 TV를 부활시킨다. 지금 그는 이 공간의 지배자, TV는 그를 위한 아첨을 시작한다. 온갖 재미난 이야기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그에게 상납한다. 그는 역시 무표정하게 TV 속의 상납을 소비해버린다. 역시 어떠한 감상도 없는 의식의 연속, 시간은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이미 해는 졌고, 거실은 어둠과 그 어둠을 이기려는 TV의 투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싸움의 종말은 역시나 그의 손으로 결판났다. 무승부, 거실의 형광등을 켜자 어둠은 물러갔지만, TV의 불빛도 그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의 앞에선 모두가 어린 양.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둠을 봐서 밤 10시 30분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오래 잠들지는 않았던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그 시각에도 그 공간에는 그 혼자만이 남아있다.

"엄마 왔다. 진호 자니?"

그의 이름은 진호다. 그도 신의 하나의 피조물일뿐 어떠한 신도 아니다. 그 공간의 신도 그는 아니다. 그는 진호라는 기호로 해석이 가능한 피조물일 뿐이다.

"찌게는 데워 먹었니?"

"설겆이는 대충 해놨어요."

"고맙다, 엄마는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잘께. 너도 바로 자라."

모자의 대화는 채 1분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들의 공통 관심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진호는 TV를 끄고 그의 방으로 보이는 새로운 공간으로 숨어들어가고, 그의 엄마는 그녀의 방으로 피신한다. 대화종료.

 

진호는 침대에 누워 이번에는 거실의 리모콘보다 조금 더 복잡한 리모콘을 집어들었다. 음악 소리가 크다. 아마도 패닉의 음악인 것 같다. 이적의 목소리가 조그만 스피커를 타고 공간을 가득 채운다.

"담배 한개피와 녹는 아이스크림..."

진호는 다시 방을 나선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노래 가사가 그를 자극한 듯 하다. 그러나 담배는 없다. 담배의 부재는 진호의 무표정으로 대체되었다. 담배 연기만큼이나 매캐한 무표정이 진호 얼굴에 가득 찬다.

음악이 멎었다. 진호는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의 TV보다 작은 TV 앞에 가부좌를 튼다. 손에 꼭 들어갈만한 작은 무언가를 들고 TV를 튼다. 그리고 TV에서 보여주는 다른 세계의 영웅이 된다.

'アナキンを レベル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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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2 17:38 2006/06/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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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day] 1. 지각, 비겁, 싸구려
2006/06/15 17:08 | anakin wonderland/another day | Permanent link

1. 지각, 비겁, 싸구려

 

 

시계를 봤다.

2시 50분 21초, 22초, 23초...

시간이 흐르는 것을 확인하자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그애는 침대에서 담배를 피는 습관을 매우 혐오스러워 했다.

"여긴 잠을 자는 곳이라고. 잠은 휴식이야. 다른 사람의 휴식을 방해하는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납되는 공간이 아니란 말야. 그렇게 담배를 피고 싶거든 조금이라도 침대에서 벗어나는게 어때? 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잖아."

어디에도 없는 논리만큼이나, 당연한 논리였다. 논리에 대한 항거는 언제나 패배뿐이다. 게다가 상대는 그애였다.

라이터 불이 공간을 채운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 첫 한 모금 만큼의 연기, 마침 돌아가는 에어컨의 실외기 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침대에 누워있지만, 더이상 그애의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이 남아 있지만, 그애만 남아있지 않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대게 5분 정도가 걸린다. 물론 필터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열심히 피웠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이 5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5분의 의미란 그런거다. 대중가요의 한 트랙보다는 길지만, 담배를 피우기엔 적당한 시간이 5분이다. 또 그애의 빈자리를 새삼 느끼기에도 충분한.

 

9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각이다.

"이정현입니다. 반차 쓰겠습니다."

상대방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끊어버렸다. 들을 가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들을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비겁하다.

기왕 늦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오히려 여유로워진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전체 학기의 삼분의 일을 결석하면 자동으로 F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고로 결석을 많이 하게 되면 기말고사 기간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어짜피 F니까. 실패가 확실할 수록 두려움은 없어지는 법인게다. 문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있는 것이다. 기왕 얻은 여유라면 유용하게 쓰는 쪽이 개인으로 보나 인류로 보나 타당하다.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짚어든 이유였다.

타당한 행동의 또다른 범주엔 먹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냉장고를 열어 젖힌 이유는 단지 공복감만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허전한 내 위만큼이나 냉장고도 공복이었다는 것이었다.

신문을 읽는둥 마는둥던져두고 샤워를 했다. 평소대로였다면 거실의 스테레오를 크게 틀어놓고 욕실문을 활짝 열고 샤워를 했겠지만, 어쩐 일인지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그렇다고 떨어지는 물 아래에서 명상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귀찮았던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귀찮음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해결되었던가. 분명 샤워기의 저 모양도 귀찮음에서 기인한 것일게다. 물론 정답은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어제 세탁소에서 찾아온 폴스튜어트의 옥스퍼드 셔츠를 입었다. 셔츠는 누가 뭐라해도 순면의 옥스퍼드가 제일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해 주었던 기억이 잠시 스친다. 그런식의 편견들은 결국 비합리적인 행동을 양산하고 만다. 옷장에 걸린 똑같은 몇벌의 셔츠들이 말해주듯이.

어제 입었던 수트를 다시 입고, 타이를 집어든 채로 차에 올랐다. 아직 10시가 되지 않은 시간. 반차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뭔가 먹으려면 나가는 수밖엔 없었다. 그 역시 안타깝다.

 

사무실에 들어선 시각은 11시 40분 경이었다. 이쪽의 시매스터가 표준시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기도 했지만, 사무실의 스케쥴을 정해주는 시계엔 눈금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모두에게 합당하게 받아들여진 나의 출근 시각은 11시 40분 경인 것이다.

"이과장, 어제 얘기한 제안서는 언제까지 가능하지?"

팀장은 마치 내 지각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있다는 듯한 눈초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쩐지 그런 태도가 더 힘들게 한다.

"어제 다 끝냈습니다. 확인하고 바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정적.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신호, 서로에 대한 무관심.

"과장님 왜 늦으셨어요?"

옆자리의 김대리가 메신저로 물어왔다. 옆자리라면 옆자리다운 커뮤니케이션이 있을텐데, 그와 나 사이엔 우주가 존재하는 것 같다. 휴스턴, 응답하라.

"어제 야근을 해서 그랬나."

"퇴근은 언제?"

"1시 정도..."

"아이고..."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기가 무섭게 다들 식사를 하러 나간다. 사무실은 역삼역을 지난 2호선 마냥 텅 비었다.

 

아침을 늦게 먹은 이유도 있었지만, 출근한지 20분만에 또 나가기도 싫었다. 그렇게 사무실엔 나 혼자만 남았다. 혼자만의 사무실.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이내 내려 놓았다. 1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담배 냄새가 빠지기엔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결국 끽연실로 이동.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싫었지만, 자판기 커피 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사실 자판기 커피에 우유가 들어있지도 않다. 그것은 우유를 대체한 뭔가 다른 것일뿐이다. 자판기가 토해내는 커피를 들고 끽연실의 싸구려 소파에 앉았다. 어쩌면 내 거실의 소파보다 고급 소파일는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번 싸구려 소파라고 인식이 되면 그것은 영락없는 싸구려 소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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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5 17:08 2006/06/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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