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1959년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 입학
1963년 도에이동화(東映動畵) 입사
(도에이동화 시절 노조 부위원장을 하며 위원장이었던 다카하다 이사오(高畑勳)와 각별한 사이가 된다.)
1971년 다카하다 이사오와 함께 A 프로 입사
1978년 '미래소년 코난', TV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
1979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극장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
1985년 도쿠마 서점(德間書店)의 지원을 받아 다카하다 이사오와 스튜디오 지브리(スタジオジブリ) 설립
흔히 말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2세대 감독의 선두주자
'게드전기'의 감독 미야자키 고로의 아버지 ㅡㅡa
<연출작>
미래소년 코난 (1978),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1979), 몀탐정 홈즈 (1982, TV), 명탐정 홈즈 (1984, 극장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이웃의 토토로 (1988), 마녀의 택급편 (1989), 붉은 돼지 (1992), 원령공주 (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벼랑위의 포뇨 (2008)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는 이 정도로 줄이고,
이제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아...
다들 잘 아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나 빨강머리 앤'은 이사오의 연출에 하야오는 원화나 콘티를 담당했다.
실제로 하야오가 연출한 TV 애니메이션은 '미래소년 코난'와 '명탐정 홈즈' (우리나라엔 '명탐정 번개'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방영했다.)의 두편이 전부다.
2000년이던가,
우리나라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그 첫 빠따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극장용 영화가 간택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의 첫 빠따는 가와지리 요시아키의 '무사 쥬베이 (수병위인풍첩)'이었다.
이미 볼만한 애들은 다 봤다는 생각이었는지,
혹은 판권이 겁나게 비쌌는지,
그도 아니면 일단 선정적인 녀석을 들여와서 욕 먹이고 개방을 늦출 생각이었는지 하야오의 작품은 무시됐다.
그래도 일단 한번 풀린 고삐를 다시 옭아매기 힘들거라는 예상들을 했는지,
방송국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고,
그 중에 인맥이 형편없었던 S방송국의 연예뉴스 작가는 나를 찾아왔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전 평론가가 아닌데요.'
'평론까지도 필요 없구요, 정리만 잘 되면 직접 출연하셔서...'
'직접 출연'이라는 말에 '훅' 넘어가 버린 나는 바로 되도 않는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도 포스팅했던 것처럼 A4 100매가 넘는 분량의 원고를 일주일에 걸려서 만들어냈다.
지금 색각하니 여름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으니,
분명 기말고사 기간이었을게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방송 출연에 대한 연락은 없다. ㅡㅡa
(물론 원고료는 잘 받았다. ^^)
당시의 나는 하야오를 굉장히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래도 일단 일본 애니메이션,
그것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고 넘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의 작품들을 다시 다 구해서 봐야만 했다.
일단 그때까지 왜 내가 하야오를 싫어했는지 말해보면,
내가 하야오를 처음 접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들 그러하 듯이 '미래소년 코난'이었다.
물론 그때부터 이렇게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봤다.
하야오라는 사람이 바다 건너 일본에 살고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을리 만무하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뉴타입'과 '아니메쥬'를 사서 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들어서는데,
그림만 보다가 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한 시기가 대략 1991년 정도다. (중학교 입학한 후라는 이야기)
당시의 하야오는 한참 '붉은 돼지'를 만들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미형의 캐릭터와 으리번쩍한 리얼로봇들에 반해있었다.
한마디로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 가와모리 쇼지가 아니면 눈길도 안주던 때였다.
특히나 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서는 더 SF 위주의 설정에 눈이 돌아갔다.
마모루 나가노에 뻑이 갔단 얘기다. ㅡㅡa
돼지가 주인공인데다,
로봇은 커녕 제트엔진도 안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눈이 갈리 없었다.
친구들 중 꽤 어른스러웠던 (이건 조금 편견이다.) 녀석들은 '라퓨타'와 '토토로'를 칭송하고 있었지만,
나는 '역습의 샤아'와 '0083'을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만난 하야오는 내 사정권 밖의 사람이었다.

조금 나이가 먹어 스무살을 전후해서,
편협했던 시선이 굉장히 넓어졌고,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내 편견은 '마법진 구루구루'로 무너졌다.)
나도 이제는 하야오를 볼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삐딱한 세계관이 하야오와의 만남을 방해했다.
스무살 전후의 나는 '트렌드'라는 단어를 굉장히 혐오했다.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라는 의지가 뚜렷해지면서,
개나 소나 다 보는 책,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은 사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안읽은 이유도,
조지 윈스턴이나 야니를 안들은 이유도,
타이타닉을 몰래 혼자 본 이유도,
하야오를 안본 이유도 다 그들이 소위 '트렌디'한 컨텐츠였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면 누구나 다 '이웃의 토토로는 봤어요.'를 이야기 하고,
'이웃집 토토로 말고 볼만한 일본 애니메이션 좀 추천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번은 들었다.
뭔가 나만이 갖고 있던 성역 같은 것이 붕괴되어 버릴 것 같은 공포도 있었다.
당시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이코닉한 뭔가였다.
그런데 하야오의 작품들로 누구나 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영역에 아무나 들어오는 것은 꽤나 겁나는 일이다.

하여튼 이런 저런 이유로 하야오를 싫어했는데,
어려서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고,
감흥이 생길 수도 있었을 시기에는 그냥 안봤다.
타이밍 한번 죽인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고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나니 하야오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하야오 이야기 한다고 포스팅 하면서 싫어했다던 얘기로 너무 많이 썼다. ㅡㅡa
이제 본격적인 포스팅 시작.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소위 '성장물'이라는 장르를 굉장히 높게 산다.
일단 '성장물'을 기본적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시련과 고난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갈등이 고조되고,
주인공이 기지를 발휘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로 이르는 수순을 따른다.
물론 하야오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다 '성장물'의 구성을 따른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성장물'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된다던가,
어른이 노인이 된다던가 하는 쪽은 쫌 난해하다.
안타깝게도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본격적으로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은 '키키'가 유일하다.
나우시카나 아시타카는 충분히 어른이었고,
사스케와 메이, 그리고 치히로는 어른이 되었다기 보다는 청소년 정도가 되었다.
물론 키키도 13살 밖에 안된 어린 아이지만,
'마녀는 13살이면 독립을 한다.'는 설정이 말해주듯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키키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을 했다는 다양한 단서들을 보여주는데,
가령 지지의 목소리를 더이상 못듣게 되었다던가,
톰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마녀로서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 등의 설정은 키키가 더 이상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본다.
이래저래 분명 내 취향에 잘 맞는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성장물'이라는 점이 강점이라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속성들을 보더라도 '키키'는 셀로 완성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극한을 보여준다.
CG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느낄 수 없는 약간은 묵직하고 따뜻한 색감이라던가,
지브리의 특기인 디테일하면서도 정겨운 배경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물론 지브리의 이후의 작품들은 논외로 하자. ^^
게다가 히사이시 조의 스코어들은 정말...
언젠 들어도 몽환적이기도 하고,
목가적인 풍경과 어우러져서 포근한 느낌을 준다. (키키의 배경은 꽤나 큰 도시던가??? ㅡㅡa)
'키키'에 대한 포스팅이 아니니 이정도로 pass~~~

지금의 나는 하야오에 대해 굉장히 중립적인 입장이다.
싫지도 좋지도 않다고 양비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작품마다 너무 편차가 커서 어느 쪽이 진정으로 하야오인지 분간이 안된다.
심지어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굉장히 멋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이건 아니지 싶은 부분도 나온다.
물론 아무리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라도 싫은 작품이 있을 수 있고,
굉장히 멋진 작품이라도 맥이 끊길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하야오 작품의 경우엔 극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내 기준에서.)
다들 좋아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개인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재미있었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지 도대체 하야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이웃의 토토로'의 도입부는 정적이면서도 활기차고,
산만하면서도 흐름을 잘 타고 넘어간다.
그러던 것이 메이가 엄마를 찾아나서면서부터는 '엄마 찾아 삼만리'를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자매의 끈끈한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 버스라고 하는 굉장히 파워풀한 장치로 거저 먹으려고 든다.
물론 이 작품이 환타지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병원 창가의 옥수수가 꼭 필요한 장치였는지 모르겠다. (토토로가 정말 있다고 강조 하고 싶었던건가???)
그래도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난 하야오의 작품에 대해 이렇다고 할 결론을 내기 힘들다.
인간의 번뇌를 몰살로 표현하는 토미노 감독이라던가, (최근에는 많이 성장하신 듯도 하지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시는 오시이 감독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확실히 할 수 있다.
물론 토미노도 좋고 오시이도 좋다. ^^
그런데 역시나 하야오는 모르겠다.

대략 내가 생각하는 하야오는 이렇다.
그 밖에 하야오가 한국을 싫어한다던가,
인종차별주의자라던가 하는 부분은 다 가쉽거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도 황당해서 하야오가 한국에 하청을 안줘서라던가,
하야오의 주인공은 다 백인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선 실소를 자아낼 수 밖에 없다.
하청 문제는 작화 퀄리티를 위해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는 스튜디오만 이용한다가 원칙이고,
주인공 문제는 88년에 이미 '토토로'를 만든 인물이 하야오다.
원체 유명인이다 보니 별 괴상한 루머에 다 휩싸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하야오의 작품 중 몇 편을 추천하자면,
-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천공의 성 라퓨타
- 마녀의 택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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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를 추천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지 저 작품들이 우수하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하야오는 장인 정신을 가진 정말 몇 안되는 크리에이터다.
스스로 원화를 그려내는 열정은 분업이 잘 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더 보기 힘들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 정도는 예외다. ㅡㅡa (그러고 보니 걔는 CG구나.)
데즈카 오사무가 씨를 뿌린 일본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이 일본 애니메이션 성장의 기폭제가 되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은 1초당 프레임 수를 극단적으로 줄여 제작 단가를 낮췄다.)
그 밭에 나가 정공법으로 수확을 거둔 이는 하야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립적이라면서 너무 우호적이잖아.)
이렇게 쓰고 보니 데즈카 오사무는 예쁜 채소를 위해 농약을 뿌린 농부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조금 고되더라도 유기농으로 채소를 길러낸 농부 같군. ㅋㅋㅋ
한참 경제가 부흥하는 시대에는 농약으로 탐스럽게 기른 채소도 시장에서 먹히지만,
결국 그 경제가 완성이 되면 다시 유기농으로 돌아가는 이치와 같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밭도 결국은 하야오의 유기농에 와서 고부가가치의 산업이 되는 것 아닐까?
*실제로 하야오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로서의 업적을 추앙하면서도, 애니메이터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시장의 상도를 붕괴한 사람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